2018년 5월 혜화역 인근에서 시작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는 도합 30만 명의 여성을 결집시켜 전례 없는 규모의 여성의제 시위로 기록되었습니다. 총 여섯 차례에 걸친 시위는 한 남성 누드 모델을 촬영해 온라인에 사진을 게시한 여성이 열흘만에 구속된 것을 계기로 촉발되었습니다. 참여자들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 범죄에 대해서는 위의 사건에서 드러난 것만큼 경찰의 적극적인 대응이 없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찰의 여성 대 남성 비율을 ‘9:1’로 만들라는 구호가 등장하였고, 이는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추지현(2019)은 지금까지 법의 언어와 집행 방식의 남성중심성이 지적된 바는 있어도, 경찰 조직의 성별 구성이 문제시된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요구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성별화된 조직의 결과물로서 법 집행”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러한 요구의 밑바탕에 ‘피해자로서의 여성’이라는 논리가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에 따르면, 여성 경찰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이라면 성폭력 피해를 경험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피해 경험은 여성이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를 근거로 합니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집니다. ‘피해자로서의 여성’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여성 경찰관 채용을 확대할 경우, 법 집행은 이전보다 성평등해질 수 있을까요?

우선 저자는 문헌 자료를 살펴보면서, 과거에 한국에서 여성 경찰관 채용이 확대된 배경에도 바로 ‘피해자로서의 여성’ 논리가 있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1946년에 처음으로 여성 경찰관을 채용하고 1990년대 후반에는 “우대조치”까지 실시했지만, 그럼에도 2000년대 초반까지 여성 경찰의 비율은 전체 경찰공무원의 4%에 불과했습니다(추지현, 2019: 86). 그러나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처가 문제시되면서 이 때부터 여성 경찰관의 비율이 본격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대면하여 조사하는 업무는 여성 경찰관이 전담하도록 함에 따라 2018년 12월 기준 여성 경찰관의 비율은 전체의 11%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여성 경찰관 채용 확대의 밑바탕에 있는 ‘피해자로서의 여성’ 논리는 경찰관의 직무 수행과 법 집행 과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여성 경찰관 25명, 남성 경찰관 15명과 수행한 인터뷰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인터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성 경찰관을 잠재적 피해자로, 남성 경찰관을 잠재적 가해자로 인식하는 경향은 성별에 따른 직무 분리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남성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여성 경찰을 잠재적 피해자이자 (시민에 의한 성폭력 피해로부터) 자신이 보호해야 할 대상, 또는 “내부고발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남성 경찰관들이 여성 동료를 부담으로 인식하고, 특정 직무에서 여성 경찰관을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반면, 여성 경찰관들은 시민과 심지어는 남성 경찰관에 의해 실제로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면서도, 자신을 보호 대상으로 상정하기보다 경찰로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남성 경찰관에 의한 성희롱은 또 다시 성별에 따른 직무 분리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별에 따라 경찰관의 직무가 분리된 상황에서 법 집행의 남성중심성 역시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여성 경찰관은 성폭력 피해자 조사를 전담하면서도 해당 사건의 가해자 검거 등 수사 업무를 맡을 기회는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여성 경찰관들은 신체 수색, 피해자와의 라포(신뢰관계) 형성, 피해자 호송 등 그때그때 피해 여성을 대면하는 업무에 동원되어 “이용당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진술했습니다. 반면 피해 여성에 대한 1차 조사 외의 수사는 남성 경찰관이 담당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여성 경찰관들에게는 수사 전문성을 기를 기회를 제한하고, 남성 경찰관들에게는 피해자의 상황을 헤아릴 기회를 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남성 가해자와 “동맹”을 맺을 가능성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성별 직무분리가 지속되면서 여성 경찰관들이 담당하는 피해자 조사 업무는 덜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참여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남성 경찰관들은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기보다는 “기소 중심 마인드”를 가지게 되어 유죄 판결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사안에서는 “안돼 안돼”하고 피해자를 돌려보내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잠재적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서 남성과 여성을 고착화하는 것은 여성이 조직 내에서 완전한 성원으로 자리잡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여러 경찰관들은 여성 경찰관이 반드시 여성의 피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남성 경찰관도 여성폭력 관련 업무를 함으로써 ‘성인지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거라는 겁니다. 이에 저자는 현재의 조직 논리와 직무 가치, (가해자 검거에 치중된) 역량의 평가 기준을 재설정할 것을 제안합니다. 여성 경찰관의 비중 확대를 넘어서 성평등한 법 집행으로 나아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할지에 대해서는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참고문헌:

추지현. 2019. “성별화된 조직의 결과물로서 법 집행: ‘피해자로서의 여성’과 경찰 성별직무분리의 효과.” 『젠더와 문화』 12(2): 7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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