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에서 확대되고 있는 ‘영 시간 계약(zero-hour contract)’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미리 정해둔 근로시간 없이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호출에 응해 근로를 제공하는 시간제 근로 계약을 말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근로 종사자를 포함하여 시간제 노동자 중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를 ‘초단시간 근로자’라고 합니다.

초단시간 노동자는 일정한 노동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까닭에 ‘주변적인 시간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초단시간 노동자는 소득 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사회보험 혜택을 받기도 어려워 ‘이중적인 소득 불안정’에 처해있고, 같은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해 경력계발 측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으며, 자존감 저하나 불안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2008년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초단시간 일자리가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일-가정 양립정책의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이번에 소개하는 문지선‧김영미(2017)의 연구는, 주당 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에 불과한 초단시간 노동자가 왜 증가하고 있고 이들의 근로조건은 어떠한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문지선‧김영미(2017)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2002~2015년 자료를 바탕으로, 초단시간 일자리에 주로 종사하는 집단이 저학력·고령층, 특히 사별 또는 이혼으로 배우자가 없는 여성임을 밝힙니다. 또 산업 별로는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이, 기업규모 별로는 ‘종사자 수 30인 미만 영세 사업체’가 초단시간 일자리의 고용 증가를 주도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초단시간 일자리는 노동자가 스스로 원하거나 일-가정 양립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원하는 직업을 못 찾았거나 당장 소득이 필요해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일-가정 양립정책의 1차 목표 집단인 유배우자 중장년층 여성의 경우조차 초단시간 일자리에 종사하는 이유로 ‘육아나 가사’를 꼽는 비중은 감소(37.2%→29.7%)한 대신, ‘선호와 일자리의 불일치’를 든 경우가 급증(6.4%→25%)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초단시간 일자리의 월평균 실질임금이 하락하고 있어, 초단시간 노동자가 근로 빈곤에 처하게 될 위험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초단시간 일자리가 늘어나며 이러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소득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근로조건이 열악한 또 다른 일자리에 종사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문지선‧김영미(2017)는 초단시간 일자리 증가 현상이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정부 정책 때문이 아닌, (1)영세 민간 사회서비스업의 성장에 따른 바닥으로의 임금경쟁, (2)빈곤 고령층의 증가, (3)법적‧제도적 미비라는 세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단추로 문지선‧김영미(2017)는 초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근로기준법,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예외조항 검토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문지선‧김영미. 2017. “한국의 초단시간 노동시장 분석.” 『산업노동연구』 23(1): 129-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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